
우리는 매일 디지털 환경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또 누군가와 멀어집니다.
메신저의 짧은 답장 하나, 인공지능 스피커의 무심한 응답, 혹은 챗봇의 차가운 문장.
이 모든 것이 때론 우리 마음에 작은 생채기를 남기곤 하지요.
그런데, 정말로 AI에게서 상처받을 수 있을까요?
심리학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을 줍니다.
심리학에서 '상처'는 대개 정서적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이해', '공감', '진심' 같은 요소들이 무시되거나 거절될 때, 마음은 쉽게 다칩니다.
이제 이 '누군가'가 사람이 아닌, AI라면 어떨까요?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챗봇이 나의 슬픔에 무심한 반응을 보였을 때,
음성 인식 비서가 나의 목소리를 자꾸 인식하지 못할 때,
의외로 우리는 '무시당했다', '소외됐다'는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이것은 AI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기대감에서 비롯된 상처입니다.
우리는 기술에게도 무언의 관계적 태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관계란 단지 정서를 주고받는 것 이상입니다.
상호작용 속에서 기대가 형성되고, 그 기대가 충족될 때 신뢰가 쌓입니다.
디지털 상호작용에서도 이런 심리적 구조는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AI는 사람처럼 공감하지 않지만, 우리가 ‘공감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설계될 수는 있습니다.
이때 형성되는 유사 관계가 기대를 만들고, 때론 실망으로 이어지며, ‘상처’라는 정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챗봇과 대화한 후 더 외로움을 느꼈다는 사용자 후기가 존재합니다.
특히 정형화된 응답,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존재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어냅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소외'의 감정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모방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술에서 인간을 기대합니다.
AI가 제공하는 '서비스' 너머에 우리가 원한 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정서적 반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AI는 상처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의 실망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AI와의 상호작용에서도 ‘현실적 기대’를 갖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작은 훈련이 디지털 환경에서 심리적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AI에게 실망한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기술 앞에 선 내 마음을, 나는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었을까요?"

| AI와 트라우마 – 상처받은 기억을 마주하는 알고리즘 (54) | 2025.07.15 |
|---|---|
| AI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 정서적 결핍과 기술적 공감 (46) | 2025.07.01 |
| AI는 나를 믿을 수 있을까? – 신뢰와 통제 사이의 심리 (33) | 2025.06.03 |
| 나는 AI와 이야기하며 치유받고 있을까?– 정서적 지지와 기술 사이에서 (54) | 2025.05.15 |
| AI가 나를 위로할 수 있을까? – 상담 챗봇이 건네는 말들 (32) | 2025.05.09 |